생명과학과가 IT 대기업에 입사하기까지 9 - 탈락, 그리고 인턴

2019. 10. 28. 21:51취업

인적성검사와 코딩테스트

대기업의 채용절차는 대개 서류(1차) - 인적성 (+직무 관련 절차)(2차) - 면접 (3차) 정도로 이뤄졌다.

1차가 끝나고, 합격한 기업은 2차인 인적성 검사를 준비해야 했다.

1차에서 반 정도 붙었는데, 느낌이 좋았던 곳은 떨어졌고, 의외의 곳들이 붙었다.

왜 붙었는지도, 왜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1차와 2차 사이엔 1주 정도 간격이 있었다.

서류기한이 기업마다 달랐기에, 어떤 기업은 서류를 이제 막 내는데 어떤 기업은 2차가 코앞에 다가온 경우도 있었다.

인적성은 기업마다 유형도, 시간도, 과목도 달랐기에 적응이 꽤 필요했다.

시험, 시험, 시험...

인적성은 말 그대로, 인성과 적성을 검사하는 것이기에, 공부한다고 잘 늘지 않는다.

IQ 검사 같은 문제를 푼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유형을 익히고 적응할 수 있으므로 시간관리나 멘탈관리(당황하지 않는 등)를 위해서 연습을 해야했다.

시중에 나온 문제집을 풀었다.

서점에 그 많은 다양한 '취업 준비' 문제집이 존재하는 이유와 잘 팔리는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체감상으로는 시중 문제집들의 적중률이 그다지 높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문제를 풀었다.

시간은 또 왜 그렇게 부족한지, 풀 수 있는 문제도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삼성전자 개발직군 경우, 그 유명한 GSAT 대신 코딩테스트를 풀어야 했다.

(이번 GSAT은 역대급으로 어려웠다고 했는데, 안 봐서 다행이다)

알고리즘과 자료구조 문제다.

이전에 IT기업인 W기업에 지원하며 공부한 그것들을 다시 꺼내 공부했다.

2문제를 3시간 안에 풀어야 했는데, 연습할 때는 2문제는 커녕 1문제도 헉헉대며 풀었었다.

 

또 다른 기업은 인적성 문제에 정보처리기사 문제를 그대로 내기도 했다.

정보처리기사 문제에는 자료구조 외에도 DB, 네트워크 등의 문제가 있었다.

DB와 네트워크는 배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료구조는 학교에서 타전공 수업을 재미로 들을 때 들었었고, SQL이나 자료구조는 웹사이트 개발에서 사용은 해봤었다.

인적성보다 정보처리기사 문제를 공부해야 한다는 게 더 막막했다.

 

2차 전형 결과

어렵다, 모르겠다

2차 전형의 결과도 1차처럼 합격률이 50%였다.

반은 붙고 반은 떨어졌다.

역시나 합격한, 또는 떨어진 이유는 모르겠다.

망한 줄 알았는데 붙기도, 어느 정도 잘 풀었는데 떨어지기도 했다.

 

코딩테스트의 경우는 이상하게도 쉬웠다.

다 풀고도 시간이 30분 남았다.

너무 이상해서 취업 카페 같은 곳과 취업준비 오픈채팅방을 봤는데, 쉬웠다고 말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래서 떨어질 줄 알았다.

 

2차 전형부터는 오프라인이니 서울로 올라가야했다.

지방이니까 아침 일찍하는 인적성을 치루기 위해선 새벽 첫 차, 아니면 전날에 인근 모텔에서 잤다.

그게 좀 힘들더라.

컨디션 조절이 쉽진 않았다.

소화가 안 돼서 아침에 소화제를 사먹고 시험을 본 적도 있다.

 

취업이 정말 쉽지 않다고 느꼈다.

아는 형 하나는 인적성 준비한다고 몇 개월 전부터 시중 문제집을 다 풀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똑똑한 형인데, 그렇게 준비했는데, 떨어졌다.

 

기업은 도대체 어떤 사람을 뽑는 것인지, 그게 제대로 뽑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몇 만 명의 사람 중 몇 백 명의 사람을 잘 뽑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 어렵다.

 

면접전형

면접 대상 기업은 2군데였다.

하나는 최종, 하나는 2번의 면접 중 첫 번째였다.

 

면접을 보고 나는 면접을 두려워하게 됐다.

다 떨어졌으니까.

내 자존감도 더욱 더.

 

면접관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 많은 면접자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봐야한다.

똑같아 보이는 면접자 중에서 눈에 띄는 사람을 걸러야 한다.

면접자를 배려할 에너지는 충분하지 않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 면접관은 내가 해왔던 것들을 그저 'toy'로 치부했다.

평가 받는 입장이 되는 것과 거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힘들더라.

 

한 면접관은 30분 면접 시간 중 10분이 막 지났을 때, 더 이상 물어볼 게 없다는 듯이 말했다.

 

"너가 면접관이야, 비전공자를 왜 뽑아야해?

전공자에 비해 플러스 알파, 아니 베타가 있어야 뽑지.

시간 충분히 줄테니 말해봐"

 

이것을 말해도, 저것을 말해도 그건 뽑히기에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면접관은 다시 팔짱을 끼고 몸을 살짝 젖힌채 말 없이 있었다.

침묵의 시간이 생겼지만, 내 머릿속은 이 세상 어디보다 시끄러웠다.

난 최선을 다해 나를 말했고, 20분은 넘게 채우고 나왔던 것 같다.

 

.

그래, 어쩌면 내가 부족할 수도 있겠지.

.

 

취업 준비 과정에서 취업준비생의 자존감은 한없이 떨어진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잘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합격'인지 '탈락'인지만 통보할 뿐이다.

탈락의 이유를 모르기에, 스스로의 탓이겠거니 할 뿐이다.

그 동안 잘못 살아온 것일까?

 

대부분의 지원자가 떨어진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떨어진다.

취준생의 자존감이 떨어진다.

뭐가 깨진 걸까

하나 남은 인턴

IT기업은 대개 대규모 공채가 없다.

각 부서에서 수시채용의 형태가 대부분이다.

신입보다는 경력직을 선호하고, 신입의 경우는 인턴이나 수습기간이 항상 있었다.

뽑힐 때까지 채용을 지속하기에 당장 급했던 대기업 공채가 먼저였다.

 

인적성이 끝났을 때, 합격한 기업이 별로 없었기에 시간이 좀 났다.

IT기업에도 눈을 돌려 채용 공고를 살펴봤다.

그 중 경력을 많이 요구하지 않았고, 인공지능을 다루는 개발 직군을 발견했다.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될만한 곳 하나를 먼저 넣었다.

나머지는 면접 끝나고 지원해야지, 했다.

(결국 그 때 넣은 하나만 넣게 됐지만.)

 

재밌던 건, 삼성전자 면접 최종 결과와 인턴 서류전형 결과가 같은 날에 나왔다.

전자는 떨어졌고 후자는 붙었다.

씁쓸.

인턴은 붙어봤자 인턴인데...

전환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미생.

 

왠지 모르게 가까워보였던 것이 다시 쭉 멀어졌다.

자신은 없었지만 기대를 걸었던 지름길은 내 길이 아니었다.

참 많이 아쉬웠다.

끝이 어딜까

그런데 그 땐 몰랐지.

그게 바로 하늘이 준 기회였다는 걸,

내가 꿈꾸던 곳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