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4. 23:43ㆍ취업
(회사의 정책 상, 어떤 일을 했는지 자세히 쓰지 못했습니다.)
1차 팀 프로젝트
인턴 생활에서 크게 2가지 프로젝트를 해야했다.
1차 프로젝트는 팀별 프로젝트로, 3명이 한 팀이 되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첫 한 달이다.
2차 프로젝트는 개인별 프로젝트로, 이것도 한 달 정도 시간이 있다.
신기하게도 이 회사는, 인턴에게도 정규직의 복지와 업무권한을 허용해줬다.
자유롭게 일할 시간을 정해서 일하도록 했고, 일을 많이 했으면 day-off의 개념까지 있었다.
즉, 한 달에 100시간 동안 일해야 한다면, 월초에 몰아서 100시간을 채우고 월말에는 회사를 쉴 수 있게 해줬다.
인턴도 마찬가지로 정규직처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턴들이 정규직이 실제로 하고 있는 서비스를 담당하여 개선하는 역할을 했다.
나 또한 하나의 서비스를 맡아 팀원과 함께 지표를 개선했다.
회사가 B2C였기에 나도 이전에 사용해본 서비스를 1차 프로젝트로 담당하게 됐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처음 1-2주는 시스템에 적응하다 시간이 훅 지나갔다.
뭔가를 할 시간도 없이 익히는 데에만 시간이 다 간 것이다.
초반에는 팀원이랑 거대한 꿈을 꿨지만, 3주차에 현실적인 작은 목표를 세우고 당장 이것저것 적용해보기 시작했다.
우리 팀은 매일 회의를 했다.
한 명은 새로운 걸 공부하고, 한 명은 코드를 짜고, 한 명은 또다른 실험을 하고...
역할이 확실히 나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강점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방향에서 일했다.
경쟁심은 별로 생기지 않았다, 같이 만들어간다는 생각 뿐이었다.
내가 공부했던 걸 설명해주고, 다른 사람이 했던 것을 듣고 피드백해주고, 모르는 건 같이 힘들어하고.
서로의 강점은 서로의 약점이었기에, 각자가 각자를 대단하게 보았다.
1차 프로젝트의 결과는 그닥 좋지 않았다.
가장 주된 기능 변화는 실제 사용자들에게 많이 선택 받지 못했다.
그 외 짜잘한 변화만 지표에서 조금 성과가 났을 뿐이다.
하지만 우린 해왔던 것을 잘 정리해서 충실히 발표를 준비했고, 1차 프로젝트를 마쳤다.
5개의 팀이 발표를 마쳤다.
맡은 프로젝트마다 상황이 달랐기에 서로 무엇을 했는지는 잘 몰랐다.
다만 어떤 팀이 깔끔하게 잘 했는지, 감은 있었다.
우리 팀은 느낌상 중간 쯤 했던 것 같다.
절대평가라고 했지만 상대적인 평가를 조금 의식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중간 면담
팀프로젝트가 끝나고 개인 면담이 있었다.
개인 면담은 1차 프로젝트에 대한 면담이었고, 2차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얘기 나누는 자리였다.
1차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을 물을 것이기에 우리 팀은 서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며 준비했다.
면담에서 의외로 어려웠던 질문은 '1차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나요'였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일을 딱 맡아서 한 건 없었다.
다른 2명은 각자의 강점을 한 것 같은데, 내가 조금 더 많이 했다고 느낀 부분은 다른 2명도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딱 어떤 역할을 맡았다고 말할 부분이 없었다.
할 일을 종합하고 정리해주는 역할을 팀에서 맡지 않았나 싶다.
그 외에 1차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은 술술 잘 말했다.
오히려 설명하고 싶은 게 많아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정도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할 말을 잘 정리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만족스러웠지만,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면서 면담을 마쳤다.
1차 프로젝트가 끝나고, 15명의 인턴 중 13명만 남았다.
2명은 중간에 그만 두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2명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공감이 되기도 하고...
가슴 아픈 상황이었다.
2차 프로젝트 - 스트레스, 스트레스.
2차 프로젝트는 개인 프로젝트로, 하고 싶은 것을 자율적으로 기획하는 것이었다.
최신 논문의 기법을 서비스에 구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논문을 정하면 되는데, 2차 프로젝트 한 달 중 일주일이 넘도록 논문을 못 정했다.
어떤 논문을 골라야 할 지 감이 안 잡히는 것이다.
어떤 건 이미 구현했고, 어떤 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또 다른 건 내 상황에 안 맞고...
고민을 많이 하긴 하는데 마땅한 것을 못 정하니까 스트레스가 꽤나 쌓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무언갈 하고 성과를 내고 있는데, 나는 시작도 못한 것이다.
부랴부랴 선정해서 시작했더니, 웬걸, 같은 논문으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이 2명이나 됐다.
3명이서 합의를 해서 방향을 정했는데, 나는 새로운 길로 방향을 틀었다.
여기서 또 시간이 지체됐다.
시간보다 문제였던 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3명이나 된다는 걸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 안에 숨겨진 비교성향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나는 다시 새로 시작하는 거였기에,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한 게 없었으니까.
그때 즈음, 나는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됐다.
스트레스로 업무 효율이 안 나는 것은 물론이고, 집에 와서 우울한 감정이 들고, 내가 하는 일이 재미가 없게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면, 내 일에서 얻는 재미보다 스트레스가 더욱 커져서 하기 싫은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는 내 전공이 아닌 이 일을 재미로 시작했고, 너무 재밌었기에 진로로 결정했는걸.
이런 식으로 이 일을 오래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회의감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압박감을 느꼈다.
전환이... 안되면... 어쩌지...?
다시... 취업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월세는 어쩌지? 내 빚은 어쩌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
... 다른 사람들은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
내겐 마음의 여유가 필요했다.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 다잡기
"막막할 땐, 가장 쉬운 100% 성공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야. 멀리 보지 말고 가까이 보자"
"내 스스로만 봐. 목표는 나답게 나만큼 하기. 정규직은 부가적인 결과일 뿐"
내가 포스트잇에 적어서 모니터에 붙여놓은 글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막막한 감정에 휩싸인 나를 다독여줄 말이었다.
일이 제대로 안 돼서 걱정이 시작되면 나를 다시 집중하게끔 만드는 말이었다.
신기하게도, 저 작은 글씨들이 머뭇거리는 나를 딱 한 걸음 앞으로 갈 힘을 만들어줬다.
딱 한 걸음 가면 보이는 새로운 광경에서 힘을 얻어 몇 걸음 더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멈추고 주저앉을 때 글귀를 보고... 다시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마음을 추스렸다.
(참고로 첫 번째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간 - 100% 성공하는 법>을 보고 적은 글이다.)
인턴 마무리
2차 프로젝트가 끝나갈 때 즈음, 나는 경고성 알림을 받았다.
포괄임금제의 52시간 근로시간이 넘기 직전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많이 일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성과를 보기 위해 마지막엔 주말도 없이 일했다.
집은 이미 잠만 자는 곳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손목과 손가락이 아파서 물파스를 가지고 다녔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 큰 성과는 없었다.
마지막 즈음에는 성과 지표를 뽑아내기 위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했어야 했는데, 멀티태스킹이 안되다 보니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기도 했다.
화요일이 성과 발표인데, 발표 이틀 전까지 성과는 0이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월요일에 성과가 딱 하나, 긍정적인 지표 딱 하나가 나왔다.
내 발표자료에서 모든 시도가 실패로 소개될 때, 성과로 소개될 단 하나의 자료.
그 마저도 '가능성'일 뿐이었지만, 그걸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혼자 조용히 의자에 앉아 결과 화면을 보면 얼마나 오두방정을 떨었는지.
물론 그 하나로 정규직 전환이 결정되지는 않을테지만, 내 프로젝트가 마냥 쓰레기는 아니었다는 생각에 만족감이 들었다.
하루만에 부랴부랴 발표자료를 만들고 발표를 끝마쳤다.
다른 사람들의 발표가 신경 안 쓰였다면 거짓말이다.
어떤 사람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성과를 내고 일을 해냈고, 어떤 사람은 뭘 했는지 잘 모르겠던 것도 있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었을까.
그렇게 인턴이 끝났고, 한동안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다.
결과 발표 전(2주 이내)까지 취업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갑자기 많아진 자유시간과 오랜만에 집에서의 여가시간이 어색하게 느껴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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